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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 성경 역사 고고학 검증

키르벳 가야파, 다윗과 골리앗의 엘라 골짜기를 내려다보던 두 성문의 요새

by Bible Proven 2026. 10. 27.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는 무대가 꽤 구체적입니다. 사무엘상 17장은 블레셋 사람들이 유다의 소고에 모여 소고와 아세가 사이에 진을 쳤고, 사울과 이스라엘 사람들은 엘라 골짜기에 진을 쳤다고 적습니다. 산과 산 사이에 골짜기가 있고, 양쪽 군대가 각각 산 위에 서 있었다고 하지요.
 
이 골짜기는 지금도 이스라엘 중부 구릉 지대에 그대로 있습니다. 그리고 2000년대에 들어, 바로 그 골짜기를 내려다보는 능선 위에서 성벽으로 둘러싸인 고대 성읍 하나가 발굴되었습니다. 키르벳 가야파(Khirbet Qeiyafa)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이 유적에서 무엇이 나왔는지, 발굴팀이 왜 이곳을 성경의 '사아라임'으로 보는지, 그리고 학자들 사이에서 어떤 논쟁이 이어지고 있는지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엘라 골짜기 쪽에서 바라본 키르벳 가야파 일대.
사진: Davidbena / Wikimedia Commons, CC0

골짜기 위의 작은 성읍

키르벳 가야파는 엘라 골짜기 북쪽 능선 꼭대기에 있습니다. 서쪽으로는 블레셋의 도시 가드가 있던 해안 평야 쪽이, 동쪽으로는 유다 산지 쪽이 이어집니다. 해안에서 산지로 올라가는 길목을 지키기에 딱 좋은 자리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소고와 아세가가 모두 가까이에 있습니다.
 
이 언덕이 고대 유적이라는 건 예전부터 알려져 있었지만, 본격적인 발굴은 2007년에 시작되었습니다. 히브리 대학교의 요세프 가핑켈과 이스라엘 고고학청의 사아르 가노르가 이끈 발굴은 2013년까지 이어졌습니다.
 
성읍의 크기는 약 2.3헥타르입니다. 축구장 세 개 정도 넓이니 큰 도시는 아닙니다. 하지만 둘레를 따라 거대한 돌로 쌓은 케이스메이트 성벽(이중벽 사이를 방으로 나눈 성벽)이 둘러싸고 있었고, 성벽 안쪽에 집들이 성벽에 붙어 둥글게 늘어서 있었습니다.

언제의 유적일까

유적의 연대를 정하는 데는 불에 탄 올리브 씨가 큰 역할을 했습니다. 성읍 안에서 나온 탄화된 올리브 씨들을 방사성탄소로 측정한 결과, 대략 기원전 1020년에서 980년 사이라는 값이 나왔습니다.
 
기원전 11세기 말에서 10세기 초. 성경 연대로 보면 사울에서 다윗으로 넘어가던 무렵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성읍이 아주 짧은 기간만 사용되고 버려졌다는 겁니다. 한 세대 남짓 사람이 살다가 떠난 흔적이라, 특정 시기를 들여다보기에 좋은 '시간 캡슐' 같은 유적이 되었습니다.

성문이 두 개

키르벳 가야파의 서쪽 성문.
사진: ekeidar / Wikimedia Commons, CC BY-SA 3.0
 
발굴에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성문이었습니다. 이 작은 성읍에 성문이 두 개 있었던 겁니다. 하나는 서쪽, 하나는 남쪽을 향하고, 둘 다 양옆에 방이 두 개씩 있는 이른바 4실 성문입니다.

남쪽 성문. 서쪽 성문과 같은 4실 구조다.
사진: ekeidar / Wikimedia Commons, CC BY-SA 3.0
 
성문은 성벽에서 가장 약한 곳입니다. 그래서 고대의 작은 성읍은 보통 성문을 하나만 냈습니다. 성문이 두 개인 도시가 없지는 않지만, 이 정도 규모의 성읍에서 두 개를 낸 건 드문 경우입니다.

'두 성문'이라는 이름의 성읍

여기서 성경의 한 지명이 떠오릅니다. 골리앗이 쓰러진 뒤의 장면입니다.

사무엘상 17:52 (개역개정)
… 블레셋 사람들의 부상자들은 사아라임 길에서부터 가드와 에그론까지 엎드러졌더라

 
'사아라임'(שערים, 샤아라임)은 히브리어로 '문'을 뜻하는 '샤아르'의 쌍수형입니다. 그대로 옮기면 '두 문', '두 성문'이라는 뜻이 됩니다. 여호수아 15:35–36에도 유다 쉐펠라 지역의 성읍 목록에 아세가, 소고와 함께 사아라임이 나옵니다.
 
엘라 골짜기 위에 있고, 소고·아세가와 가깝고, 실제로 성문이 두 개인 성읍. 발굴팀은 이런 근거로 키르벳 가야파를 성경의 사아라임으로 보았습니다.

그렇다고 단정할 수는 없는 이유

이 비정은 발굴팀의 제안이라는 점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이곳을 사아라임이 아닌 다른 성경 지명으로 보거나, 성문이 두 개라는 점만으로는 근거가 약하다고 보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지명 비정은 원래 확정이 어려운 분야라서, 비문에 이름이 직접 나오지 않는 한 늘 여러 가능성이 남습니다.
 
더 큰 논쟁은 이 성읍이 누구의 것이었느냐입니다. 발굴팀은 돼지 뼈가 나오지 않은 점(블레셋 유적에서는 흔히 나옵니다), 성벽과 집이 붙어 있는 배치가 이후 유다 성읍들과 닮은 점 등을 들어 유다 왕국의 성읍으로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다윗 시대에 이미 조직적인 국가가 있었다는 증거라고 주장했습니다.
 
반면 이스라엘 핑컬스타인 같은 학자들은 같은 자료를 다르게 읽습니다. 사울 시대의 정치체나 다른 지역 세력의 요새일 수 있고, 이 유적 하나로 다윗 왕국의 규모를 말하기는 어렵다는 겁니다. 이 논쟁은 지금도 진행 중입니다.
 
영상에서는 '유다의 성읍' 이라는 표현을 쓰지 는않았습니다.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성경이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의 무대로 묘사한 바로 그 골짜기에, 바로 그 무렵 성벽과 두 성문을 갖춘 요새 성읍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다섯 줄의 잉크 글씨

성경의 땅 박물관 '키르벳 가야파' 전시에 소개된 오스트라콘.
사진: Bukvoed / Wikimedia Commons, CC BY 4.0
 
2008년, 이 유적에서 또 하나의 화제가 된 유물이 나왔습니다. 토기 조각에 잉크로 쓴 다섯 줄의 글, 가야파 오스트라콘입니다. 초기 알파벳(원가나안 문자)으로 쓰였는데, 이 시기의 글로서는 꽤 긴 편이라 학계의 큰 관심을 받았습니다.
 
다만 해석은 아직 정리되지 않았습니다. 글씨가 많이 바래 읽기 어렵고, '재판하다', '왕' 같은 단어가 보인다는 판독이 있지만 문장 전체의 뜻에 대해서는 학자마다 의견이 다릅니다. 언어가 히브리어인지 다른 가나안 계통의 언어인지도 논쟁 중입니다. 발굴팀은 히브리어라고 보지만 동의하지 않는 학자들도 많습니다.
 
이 오스트라콘에 성문이나 사아라임 이야기가 적혀 있는 건 아닙니다. 그래서 영상에서도 성문 이야기는 성문 사진으로 하고, 오스트라콘은 마지막 장면에 따로 소개했습니다.

37초 영상으로 보기

쇼츠로 짧게 정리한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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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눈에 보기

유적키르벳 가야파 (Khirbet Qeiyafa)
위치이스라엘 엘라 골짜기 북쪽 능선, 소고와 아세가 사이
연대기원전 1020–980년경 (방사성탄소)
발굴2007–2013년, 요세프 가핑켈·사아르 가노르
특징면적 약 2.3헥타르, 케이스메이트 성벽, 4실 성문 2개(서·남)
출토 문자가야파 오스트라콘 (2008년, 잉크 5행, 초기 알파벳)
함께 읽을 성경사무엘상 17:1–3, 17:52 / 여호수아 15:35–36

 
참고한 자료

  • Y. Garfinkel & S. Ganor, Khirbet Qeiyafa Vol. 1: Excavation Report 2007–2008 (Israel Exploration Society, 2009)
  • Y. Garfinkel, S. Ganor & M. G. Hasel, In the Footsteps of King David (Thames & Hudson, 2018)
  • I. Finkelstein & A. Fantalkin, "Khirbet Qeiyafa: An Unsensational Archaeological and Historical Interpretation," Tel Aviv 39 (2012)

 
사진 출처: ① Davidbena, "View of Khirbet Qeiyafa.jpg", Wikimedia Commons, CC0 ② ekeidar, "West Gate, Khirbet Qeiyafa, Ha'Ella Valey", Wikimedia Commons, CC BY-SA 3.0 ③ ekeidar, "South Gate, Khirbet Qeiyafa, Ha'Ella Valey", Wikimedia Commons, CC BY-SA 3.0 ④ Bukvoed, "Bible-Lands-Museum-Khirbet-Qeiyafa-30244.jpg", Wikimedia Commons, CC BY 4.0


 
사무엘상 17장을 읽을 때 우리는 보통 소년과 거인에게만 눈이 갑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 끝자락에 지나가듯 나오는 '사아라임 길'이라는 지명이, 3천 년 뒤 능선 위의 두 성문과 함께 다시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그 연결이 맞는지는 아직 학자들이 따지는 중이지만, 그 골짜기에 그 시대 사람들이 성을 쌓고 살았다는 건 분명합니다.
 
지난 글들이 비석과 유골함, 황제의 편지를 다뤘다면, 이번에는 땅 자체, 성경의 무대가 된 지형을 처음으로 다뤄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