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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 성경 역사 고고학 검증

검은 오벨리스크, 앗시리아 왕 앞에 엎드린 '오므리의 아들 예후'는 누구일까

by Bible Proven 2026. 10. 28.

성경에 나오는 왕들 가운데 얼굴이 남은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다윗도, 솔로몬도, 히스기야도 그들이 살던 시대에 그려진 모습은 전해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외처럼 이야기되는 유물이 하나 있습니다. 영국 대영박물관 앗시리아 전시실 한가운데 서 있는 검은 돌기둥, 살만에셀 3세의 검은 오벨리스크입니다. 이 기둥에는 앗시리아 왕 앞에 엎드린 한 사람과 함께 '예후'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성경 열왕기하에 나오는 바로 그 이스라엘 왕의 이름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이 장면에 실제로 무엇이 적혀 있는지, 그리고 이 그림을 '이스라엘 왕의 초상'이라고 불러도 되는지까지 차근차근 살펴보겠습니다.

대영박물관의 검은 오벨리스크. 높이는 2m 남짓이다.
사진: Osama Shukir Muhammed Amin /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니므롯에서 나온 검은 기둥

1846년, 영국의 젊은 탐험가 오스틴 헨리 레이어드는 지금의 이라크 북부 니므롯 언덕을 파고 있었습니다. 니므롯은 앗시리아의 옛 수도 칼후, 창세기 10장에 '갈라'로 나오는 도시입니다. 그 발굴 현장에서 거의 손상 없이 서 있는 검은 석회암 기둥이 드러났습니다.

 

기둥을 세운 사람은 앗시리아 왕 살만에셀 3세입니다. 기원전 858년부터 824년까지 다스리며 거의 해마다 원정을 떠났던 왕이지요. 그는 말년에 이 기둥을 세워 자기가 정복한 땅과 받은 조공을 자랑했습니다.

 

기둥의 네 면에는 다섯 단씩, 모두 스무 개의 부조가 새겨져 있습니다. 낙타와 원숭이, 코끼리까지 끌고 온 행렬이 이어지고, 장면마다 위쪽에 짧은 설명문이 붙어 있습니다. 어느 나라 누가 무엇을 바쳤는지 적어 둔 일종의 캡션입니다.

두 번째 단의 설명문

2단 부조. 왕 앞에 한 사람이 엎드려 있고 그 뒤로 조공 행렬이 이어진다.
사진: Steven G. Johnson / Wikimedia Commons, CC BY-SA 3.0

 

문제의 장면은 위에서 두 번째 단에 있습니다. 화려한 옷을 입은 앗시리아 왕이 서 있고, 그 발치에 한 사람이 이마를 땅에 대고 엎드려 있습니다. 그 뒤로 그릇과 보따리를 든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습니다.

 

장면 위의 설명문을 학자들은 이렇게 읽습니다.

ma-da-tu šá ia-ú-a mār ḫu-um-ri-i
"오므리의 아들 예후의 조공"

 

이어지는 내용은 조공 목록입니다. 은, 금, 금으로 만든 그릇과 잔과 양동이, 주석, 왕이 손에 드는 홀 같은 물건들이 적혀 있습니다.

 

앗시리아의 다른 연대기에도 같은 사건이 나옵니다. 살만에셀 3세는 즉위 18년째 되는 해에 다메섹의 하사엘을 치러 내려왔고, 그때 두로와 시돈, 그리고 '오므리의 아들 예후'에게서 조공을 받았다고 기록합니다. 연도로 환산하면 기원전 841년입니다.

성경 속 예후

예후 이야기는 열왕기하 9장과 10장에 자세히 나옵니다. 그는 이스라엘 군대의 장관이었는데, 선지자 엘리사가 보낸 젊은 선지자에게 기름 부음을 받고 반란을 일으킵니다. 그리고 아합의 아들 요람 왕과 유다 왕 아하시야, 이세벨까지 차례로 죽이고 아합의 집안을 끝냅니다.

열왕기하 10:36 (요지)
예후가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린 기간은 스물여덟 해였다.

 

성경은 예후가 앗시리아에 조공을 바쳤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대신 10장 32절 이후에, 그 무렵부터 아람 왕 하사엘이 이스라엘 땅을 잘라 먹기 시작했다고 기록합니다. 앗시리아가 하사엘을 치러 내려온 바로 그 시기에 예후가 앗시리아 편에 서서 조공을 바쳤다고 보면, 두 기록은 서로 다른 각도에서 같은 국제 정세를 보여 주는 셈입니다.

'오므리의 아들'이라는 이상한 호칭

여기서 고개를 갸웃하게 되는 대목이 있습니다. 예후는 오므리의 손자 요람을 죽이고 오므리 왕조를 끝낸 사람입니다. 그런데 앗시리아는 그를 '오므리의 아들'이라고 불렀습니다.

 

이건 앗시리아가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오므리의 집(비트 훔리)'이라고 불렀기 때문으로 설명됩니다. 오므리가 사마리아를 세우고 국력을 키운 왕이라 그 이름이 나라 이름처럼 굳어진 것이지요. 그래서 여기서 '아들'은 핏줄이라기보다 '오므리 나라의 왕' 정도의 뜻으로 읽습니다. 지난번 메샤 석비에서도 모압 왕이 '이스라엘 왕 오므리'를 언급했던 것을 떠올려 보면, 오므리라는 이름이 주변 나라들에 얼마나 크게 남았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정말 예후의 얼굴일까

이 장면은 흔히 '현존하는 유일한 이스라엘 왕의 모습'으로 소개됩니다. 그런데 이 말에는 조심해서 붙여야 할 단서가 두 가지 있습니다.

 

첫째, 엎드린 사람이 예후 본인인지 분명하지 않습니다. 설명문은 '예후의 조공'이라고만 할 뿐, 이 사람이 예후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앗시리아 부조에서 조공국의 왕이 직접 와서 엎드리는 경우도 있지만, 사신이 대신 오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인물을 예후가 보낸 사신으로 보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둘째, 얼굴이 실제 모습을 닮게 그려졌다고 볼 근거는 없습니다. 앗시리아 조각가들은 외국인을 그릴 때 옷과 머리 모양으로 출신을 나타냈을 뿐,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을 그대로 옮기지는 않았습니다. 엎드린 사람의 뾰족한 모자와 술 달린 옷은 '이스라엘 사람'이라는 표시로 보는 것이 맞습니다.

 

덧붙여, 이 이름을 예후가 아니라 요람(여호람)으로 읽자는 주장(P. K. McCarter, 1974)도 있었습니다. 다만 기원전 841년이라는 연도와 철자 문제 때문에 학계 다수는 지금도 예후로 읽습니다.

 

그러니 정확하게 말하면 이렇습니다. 검은 오벨리스크는 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 왕의 이름과 함께 새겨진 가장 오래된 그림이고, 그 그림 속 인물은 예후 본인이거나 예후가 보낸 사람입니다.

37초 영상으로 보기

쇼츠로 짧게 정리한 영상입니다.

한눈에 보기

항목 내용
유물 살만에셀 3세의 검은 오벨리스크
연대 기원전 825년경 (조공 사건은 기원전 841년)
발견 1846년, 오스틴 헨리 레이어드, 니므롯(칼후)
크기·재질 높이 약 2m, 검은 석회암, 4면 × 5단 부조
핵심 비문 2단 "오므리의 아들 예후의 조공"
소장 영국 대영박물관 (ME 118885)
함께 읽을 성경 열왕기하 9–10장, 열왕기상 19:16

 

참고한 자료

  • J. B. Pritchard (ed.), Ancient Near Eastern Texts, 3rd ed. (1969), p. 281
  • A. K. Grayson, Assyrian Rulers of the Early First Millennium BC II (858–745 BC), RIMA 3 (1996)
  • P. K. McCarter, "'Yaw, Son of Omri': A Philological Note on Israelite Chronology," BASOR 216 (1974)

 

사진 출처: ① Osama Shukir Muhammed Amin, "The Black Obelisk of Shalmaneser III, 9th century BC, from Nimrud, Iraq. The British Museum.jpg",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② Steven G. Johnson, "Black Obelisk Yehu in front of Shalmaneser III.jpg", Wikimedia Commons, CC BY-SA 3.0


 

열왕기하는 예후를 바알 숭배를 쓸어버린 열정적인 왕으로 기억합니다. 앗시리아는 같은 사람을 은과 금을 들고 와 엎드린 조공국의 왕으로 새겼습니다. 어느 쪽도 상대방의 이야기를 하지 않지만, 두 기록은 같은 해 같은 사람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지난 글의 고레스 원통이 페르시아의 시대였다면, 이번에는 그보다 300년쯤 앞선 앗시리아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