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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 성경 역사 고고학 검증

고레스 원통, 바벨론을 정복한 페르시아 왕은 정말 포로들을 고향으로 돌려보냈을까

by Bible Proven 2026. 10. 24.

에스라서는 한 장의 조서로 시작합니다. 페르시아 왕 고레스가 예루살렘에 성전을 다시 지으라고 명령했고, 그래서 바벨론에 끌려와 있던 유다 사람들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런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제국의 왕이 정복한 땅의 포로들을 정말 그렇게 돌려보냈을까? 성경 저자가 자기 민족 입장에서 좋게 쓴 이야기는 아닐까?

 

이 질문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유물이 영국 대영박물관에 있습니다. 손에 들 만한 크기의 진흙 원통, 고레스 원통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이 원통에 실제로 무엇이 적혀 있는지, 그리고 성경과는 어디까지 이어 볼 수 있고 어디서부터는 조심해야 하는지 차근차근 짚어 보겠습니다.

대영박물관에 전시된 고레스 원통(BM 90920). 길이는 약 23cm다.
사진: Prioryman / Wikimedia Commons, CC BY-SA 3.0

바벨론이 무너진 해

기원전 539년, 메소포타미아의 패권이 바뀌었습니다. 느부갓네살이 즉위한 뒤로 60여 년 동안 근동을 호령하던 신바빌로니아 제국이 페르시아의 고레스(키루스 2세)에게 무너진 겁니다. 바벨론 성은 큰 전투 없이 넘어갔다고 전해집니다.

 

고레스는 바벨론에 들어온 뒤 자신이 이 도시의 정당한 새 주인이라는 걸 알릴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 선전이 담긴 문서가 바로 이 원통입니다. 진흙을 통 모양으로 빚어 쐐기문자로 빼곡히 글을 새긴 뒤, 바벨론의 주신 마르둑의 신전 기초에 묻었습니다. 건물을 짓거나 고칠 때 기초에 문서를 묻는 건 메소포타미아 왕들의 오래된 관습이었습니다.

 

원통은 1879년, 영국박물관의 발굴 책임자였던 호르무즈드 라삼이 바벨론 유적에서 찾아냈습니다. 2,400년 넘게 땅속에 있던 왕의 목소리가 다시 나온 셈입니다.

원통은 누구의 말로 쓰였을까

원통의 글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앞부분은 3인칭입니다. 바벨론의 마지막 왕 나보니두스가 신들을 소홀히 하고 백성을 괴롭혔다고 비난하고, 그래서 마르둑 신이 의로운 왕을 찾다가 고레스를 불렀다고 말합니다.

 

중간부터는 고레스가 직접 '나'라고 말합니다. "나는 고레스, 세상의 왕, 위대한 왕…"으로 시작해서, 바벨론에 평화롭게 들어왔고 주민들의 짐을 덜어 주었다고 자랑합니다.

 

여기서 하나 짚어 둘 점이 있습니다. 이 글은 명령문으로 된 '칙령'이 아닙니다. 왕이 이미 한 일을 1인칭으로 적은 기록입니다. 흔히 고레스 원통을 '포로 해방 칙령'이라고 부르는데, 엄밀히 말하면 칙령 자체라기보다 정책을 자랑하는 왕의 기록이라고 보는 편이 정확합니다.

32행에 적힌 문장

원통 표면의 아카드어 쐐기문자. 사진에서 정확히 몇 행인지 구분하기는 어렵다.
사진: Daderot / Wikimedia Commons, CC0

 

원통의 30~34행쯤에 이 유물이 유명해진 이유가 담겨 있습니다. 고레스는 티그리스강 건너편의 여러 도시들, 아수르와 수사, 아카드, 에쉬누나 같은 곳을 나열한 뒤, 그곳의 신상들을 원래 성소로 돌려보내고 영원한 거처를 마련해 주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입니다.

upaḫḫiramma utēra dadmīšun
"그들의 백성을 모두 모아 그들의 거처로 돌려보냈다." (32행, 아카드어 음역)

 

바벨론으로 옮겨져 있던 신상과 사람들을 각자의 고향으로 돌려보냈다는 내용입니다. 앞선 앗시리아와 바빌로니아가 정복한 민족을 다른 땅으로 강제로 옮겨 살게 하는 정책을 썼던 걸 생각하면, 고레스는 그와 다른 길을 택했다고 스스로 밝히고 있는 셈입니다.

에스라 1장과 나란히 놓고 보면

이제 성경 쪽을 보겠습니다.

에스라 1:2–3 (개역개정)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세상 만국을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 너희 중에 그의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

 

역대하 36:22–23도 같은 조서를 짧게 전하고, 이사야 44:28은 고레스를 두고 "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중건되리라" 하는 이로 부릅니다.

 

두 기록을 나란히 놓으면 닮은 점이 분명합니다. 정복한 왕이 다른 민족의 신을 존중하는 말투로 말하고, 성전을 다시 세우게 하고, 사람들을 고향으로 돌려보냅니다. 원통에서는 마르둑이 고레스를 불렀다고 하고, 에스라에서는 여호와가 고레스에게 명령했다고 합니다. 각 민족에게 그들의 신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 이것이 고레스식 통치의 특징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도 분명히 해 둘 것

다만 여기서 선을 하나 그어 두고 싶습니다. 고레스 원통에는 유다도, 예루살렘도, 유대인도 나오지 않습니다.

 

원통이 이름을 드는 곳은 모두 메소포타미아와 그 주변 도시들입니다. 그래서 원통을 "에스라서 칙령의 원본"이라고 소개하거나, "성경과 1:1로 일치한다"고 말하는 건 지나친 설명입니다. 실제로 그런 식의 소개가 인터넷에 꽤 많습니다.

 

원통이 보여 주는 건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고레스가 바벨론을 정복한 뒤 강제로 옮겨진 신상과 사람들을 고향으로 돌려보내는 정책을 폈다는 것, 그리고 그 사실을 고레스 자신이 남긴 동시대 기록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것. 에스라 1장이 말하는 유다 사람들의 귀환은 바로 그 정책의 테두리 안에 자연스럽게 들어갑니다.

 

원통에 대한 또 하나의 유명한 별명, '세계 최초의 인권 선언'도 조심해서 보는 게 좋겠습니다. 이건 20세기에 붙은 현대적인 해석입니다. 학계에서는 대체로 새 왕이 자신의 정통성을 알리려고 만든 선전 문서로 봅니다. 그렇다고 그 안에 담긴 정책이 거짓이라는 뜻은 아니고, 문서의 성격이 그렇다는 겁니다.

70년이라는 숫자

에스라 1장은 이 일을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시려고" 일어났다고 설명합니다. 예레미야 25:11–12와 29:10에 나오는 70년 예언입니다.

 

이 70년을 언제부터 셀지는 해석이 갈립니다. 첫 포로가 끌려간 기원전 605년부터 셈하면 고레스의 귀환 조서(기원전 538년경)까지 대략 70년이 되고,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진 586년부터 셈하면 성전이 다시 봉헌된 515년까지가 약 70년이 됩니다. 어느 쪽이든 숫자가 대략 맞아떨어진다는 점은 흥미롭지만, 어느 계산이 맞다고 단정할 문제는 아닙니다.

37초 영상으로 보기

쇼츠로 짧게 정리한 영상입니다.

한눈에 보기

항목 내용
유물 고레스 원통 (Cyrus Cylinder)
연대 기원전 539년 이후 (바벨론 정복 직후)
재질·크기 구운 진흙, 길이 약 23cm
발견 1879년, 호르무즈드 라삼, 바벨론
언어 아카드어 (쐐기문자)
소장 영국 대영박물관 (BM 90920)
함께 읽을 성경 에스라 1:1–4, 역대하 36:22–23, 이사야 44:28

 

참고한 자료

  • Irving Finkel (ed.), The Cyrus Cylinder: The King of Persia's Proclamation from Ancient Babylon (I.B. Tauris, 2013)
  • J. B. Pritchard (ed.), Ancient Near Eastern Texts, 3rd ed. (1969), pp. 315–316
  • Amélie Kuhrt, "The Cyrus Cylinder and Achaemenid Imperial Policy," JSOT 25 (1983)

 

사진 출처: ① Prioryman, "Cyrus Cylinder front.jpg", Wikimedia Commons, CC BY-SA 3.0 ② Daderot, "Cyrus Cylinder, Babylon, Iraq, mid 500s BC, cuneiform on clay - British Museum - DSC01316.jpg", Wikimedia Commons, CC0


 

고레스는 원통에서 자신을 마르둑이 고른 왕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에스라서는 같은 왕을 여호와께서 감동시키신 왕이라고 말합니다. 한 사람을 두고 두 민족이 각자의 언어로 남긴 기록이, 2,500년이 지난 지금 같은 시대의 모습을 함께 보여 주고 있습니다.

 

지난 글들에서는 앗시리아의 산헤립을 만났습니다. 이번에는 그 뒤를 이은 바벨론이 무너지고, 포로들이 돌아가는 장면까지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