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에서 이긴 왕이 기념비를 세웁니다. 그런데 그 비석에 적국 왕의 이름과, 적국이 섬기던 신의 이름까지 새겨져 있다면 어떨까요?
기원전 9세기, 요단강 동쪽의 작은 왕국 모압의 왕 메샤가 세운 비석이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이 돌에는 이스라엘 왕 오므리의 이름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야훼(YHWH, 여호와)의 이름이 함께 새겨져 있습니다. 게다가 이 메샤는 성경 열왕기하 3장에 나오는 바로 그 '모압 왕 메사'입니다.
성경 인물이 직접 남긴 기록이라는 점만으로도 흥미로운데, 이 비석은 성경과 같은 사건을 반대편 시각에서 들려줍니다. 어디가 맞아떨어지고 어디가 다른지까지 같이 보겠습니다.

루브르 박물관의 메샤 석비(AO 5066). 매끈한 검은 부분이 원래 돌이고, 나머지는 탁본을 바탕으로 복원한 부분이다.
사진: Mbzt /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양을 치던 모압 왕
모압은 사해 동쪽 고원에 있던 작은 나라입니다. 성경에서는 룻의 고향으로, 또 이스라엘과 오랫동안 얽히고설킨 이웃으로 자주 등장합니다.
열왕기하 3장은 모압 왕 메사를 이렇게 소개합니다.
열왕기하 3:4–5 (개역개정)
⁴ 모압 왕 메사는 양을 치는 자라 새끼 양 십만 마리의 털과 숫양 십만 마리의 털을 이스라엘 왕에게 바치더니
⁵ 아합이 죽은 후에 모압 왕이 이스라엘 왕을 배반한지라
모압은 북이스라엘에 무거운 조공을 바치던 속국이었고, 아합이 죽자 등을 돌렸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메샤 왕이 자기 입장에서 쓴 기록이 3,000년 가까이 지나 실물로 나타난 셈입니다.
(개역개정은 '메사'로 적지만, 학계에서는 보통 '메샤(Mesha)'라고 부릅니다. 이 글에서도 메샤로 쓰겠습니다.)
발견, 그리고 산산조각
1868년, 독일 출신 선교사 F. A. 클라인이 오늘날 요르단의 디반에서 위쪽이 둥근 검은 현무암 비석을 보게 됩니다. 디반은 성경에 나오는 모압 도시 디본입니다. 높이는 1미터가 넘었고, 표면에는 글자가 빼곡했습니다.
이 비석의 가치가 알려지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합니다. 프로이센, 프랑스, 영국 쪽 사람들이 서로 비석을 손에 넣으려 했고, 긴장이 높아지자 1869년 현지 부족이 비석을 깨뜨려 조각들을 흩어 버렸습니다. 불에 달군 뒤 찬물을 부어 깨뜨렸다고 전해집니다.
다행히 그 전에 프랑스 학자 샤를 클레르몽-가노가 젖은 종이를 대고 두드려 비문의 탁본을 떠 둔 상태였습니다. 나중에 사들인 조각들과 이 탁본을 맞춰서 비석을 복원했고, 지금은 파리 루브르 박물관(소장번호 AO 5066)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박물관에서 보면 원래 돌 부분과 석고로 복원한 부분이 섞여 있습니다.
34줄짜리 승전 보고서
비문은 모두 34행이고, 메샤가 1인칭으로 자기 업적을 말하는 형식입니다.
먼저 자기소개로 시작합니다. "나는 메샤, 그모스[…]의 아들, 모압 왕, 디본 사람이다."
이어서 억압의 시절을 회상합니다. 이스라엘 왕 오므리와 그 아들이 오랫동안 모압을 짓눌렀는데, 그건 모압의 신 그모스가 자기 땅에 노했기 때문이었다고 설명합니다.
그다음은 해방 전쟁입니다. 메샤는 그모스의 명령을 받아 이스라엘이 차지했던 성읍들을 하나씩 공격합니다. 아다롯, 느보, 야하스 같은 곳을 빼앗고 주민들을 죽였다고 기록합니다. 마지막에는 성벽, 성문, 궁전, 저수지를 쌓고 아르논 골짜기에 길을 냈다는 건설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몇 군데는 성경을 읽어 온 분이라면 눈이 멈출 만한 대목입니다.
느보 점령 기사에서 메샤는 주민을 모두 죽여 신에게 '바쳤다(ḥrm)'고 말합니다. 여호수아서 등에 나오는 '헤렘', 곧 진멸해서 바친다는 개념과 같은 말입니다. 고대 근동의 전쟁 관습을 연구할 때 이 비문이 자주 인용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또 10행에서는 "갓 사람이 예로부터 아다롯 땅에 살았다"고 말합니다. 성경도 갓 지파가 디본과 아다롯 등을 건축했다고 기록합니다(민수기 32:34). 이스라엘과 싸우던 모압 왕의 비문이, 요단 동편에 갓 지파가 살았다는 성경의 지리 정보와 맞아떨어지는 셈입니다.
돌에 새겨진 두 이름

원래 돌 표면(9–17행 부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으며, 단어 사이를 점으로 구분한다. 14행에 '이스라엘(yśrʾl)'이 보인다.
사진: Mbzt /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부분 확대)
비문은 히브리어와 아주 가까운 모압어로, 고대 가나안 문자(페니키아–고대 히브리 문자)로 쓰였습니다. 단어 사이마다 작은 점을 찍어 구분해서 비교적 읽기가 수월한 편입니다.
| 원문 | 음역 | 뜻 | 위치 |
|---|---|---|---|
| 𐤏𐤌𐤓𐤉 𐤌𐤋𐤊 𐤉𐤔𐤓𐤀𐤋 | ʿMRY MLK YŚRʾL | 이스라엘 왕 오므리 | 4–5행 |
| 𐤉𐤄𐤅𐤄 | YHWH | 야훼(여호와) | 18행 |
오므리는 열왕기상 16장에 나오는 북이스라엘의 왕으로, 사마리아를 수도로 세운 인물이자 아합의 아버지입니다. 성경은 오므리에게 몇 구절밖에 할애하지 않지만, 메샤 석비와 앗시리아 기록을 보면 주변 나라들이 이름으로 기억하던 꽤 강한 왕이었습니다. 앗시리아는 오므리가 죽고 한참 뒤에도 이스라엘을 '오므리의 집'이라고 불렀을 정도입니다.
야훼라는 이름은 17–18행 느보 점령 기사에 나옵니다. 메샤는 "그곳에서 야훼의 [그릇]들을 가져다 그모스 앞에 끌어다 놓았다"고 적었습니다. 이스라엘 성읍 느보에 야훼를 섬기는 장소와 기물이 있었고, 메샤가 그것을 전리품으로 자기 신 앞에 바쳤다는 뜻입니다.
생각해 보면 묘한 일입니다. 자기 신 그모스를 높이려고 세운 비석에, 정복당한 쪽이 섬기던 신의 이름이 그대로 남았으니까요. 메샤 석비는 지금까지 확인된 것 가운데 성경 밖에서 YHWH라는 이름을 기록한 가장 이른 확실한 사료로 인정받습니다. 기원전 800년경의 쿤틸렛 아즈루드 비문에 나오는 YHWH보다도 앞섭니다.
몇 가지 단서도 함께 적어 둡니다. 에발산에서 나왔다는 이른바 '저주 판'(2022년 발표)에 더 이른 YHWH 표기가 있다는 주장이 있지만, 판독과 연대 모두 아직 논쟁 중입니다. 또 18행의 '그릇(kly)'은 일부 복원된 판독이라서 '제단 화로' 등으로 읽는 학자도 있습니다. 다만 YHWH라는 이름 자체의 판독에는 이견이 거의 없습니다.
성경과 맞는 부분, 다른 부분
두 기록을 나란히 놓으면 큰 흐름은 같습니다. 모압은 오므리 왕조의 지배를 받았고(석비 4–7행, 열왕기하 3:4), 메샤 때 반역해서 떨어져 나갔습니다(열왕기하 1:1, 3:5). 디본, 아다롯, 느보, 야하스 같은 지명도 성경의 요단 동편 지명과 그대로 겹칩니다. 이스라엘의 신은 야훼, 모압의 신은 그모스라는 구도도 같습니다. 성경도 모압을 '그모스의 백성'이라고 부르니까요(민수기 21:29).
다른 부분도 분명히 있습니다.
먼저 반역 시점입니다. 성경은 아합이 죽은 뒤에 반역했다고 하는데, 석비는 오므리의 '아들(아합)의 날' 동안에 일어난 일처럼 서술합니다. 석비가 여러 해에 걸친 일을 한데 묶어 썼다고 보는 해석도 있고, '아들'을 손자까지 포함하는 넓은 뜻으로 보는 해석도 있습니다.
그리고 열왕기하 3:6–27에 나오는 연합군 원정입니다. 이스라엘·유다·에돔 연합군이 모압을 치고, 궁지에 몰린 모압 왕이 성벽 위에서 맏아들을 번제로 바치는 장면이 성경에 나오는데, 이 이야기는 석비에 없습니다. 승전비가 자기에게 불리했던 일을 적지 않는 건 흔한 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비석이 직접 뒷받침한다고 말할 수 있는 건 "모압이 오므리 왕조의 지배를 받다가 메샤 때 반역했다"는 큰 줄기까지입니다. 연합군 전쟁의 세부까지 확인해 준다고 하면 지나친 말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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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눈에 보기
| 항목 | 내용 |
|---|---|
| 유물 | 메샤 석비 (Mesha Stele / 모압 석비, Moabite Stone) |
| 연대 | 기원전 840년경 (9세기) |
| 발견 | 1868년, 디반(성경의 디본, 현 요르단), F. A. 클라인 |
| 재질·언어 | 현무암, 모압어(고대 가나안 문자) 34행 |
| 소장 | 루브르 박물관(파리), AO 5066 |
| 핵심 구절 | 4–5행 '이스라엘 왕 오므리', 18행 'YHWH' |
| 함께 읽을 성경 | 열왕기하 1:1, 3:4–27, 열왕기상 16장, 민수기 21:29, 32:34 |
참고한 자료
- J. B. Pritchard (ed.), Ancient Near Eastern Texts, 3rd ed. (1969), pp. 320–321
- A. Dearman (ed.), Studies in the Mesha Inscription and Moab (1989)
- A. Lemaire, "'House of David' Restored in Moabite Inscription," Biblical Archaeology Review 20:3 (1994)
사진 출처: ① Mbzt, "F4171 Louvre stele de Mesha AO5066 rwk.jpg" ② Mbzt, "F4173 Louvre stele de Mesha AO5066 detail ecriture rwk.jpg" (모두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메샤는 자기 신의 승리를 자랑하려고 이 비석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2,800년이 지난 지금, 그 돌은 오므리 왕조와 모압의 반역, 그리고 이스라엘이 섬긴 야훼의 이름이 실제 역사 속에 있었다는 증거로 남았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사도신경에 이름이 나오는 로마 총독, 본디오 빌라도의 비석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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