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밖에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은 언제 처음 나올까요?
성서고고학 책을 몇 권만 펼쳐 봐도 답은 거의 같습니다. 이집트 카이로의 박물관에 서 있는 높이 3미터가 넘는 검은 돌, 메르넵타 석비입니다. 기원전 1208년경에 세워진 비석이니 지금으로부터 약 3,200년 전 기록입니다.
그런데 막상 비문을 읽어 보면 조금 의외입니다. 이스라엘 이야기는 28행 가운데 단 한 줄뿐이고, 나머지는 거의 다 리비아와의 전쟁 이야기거든요. 그 한 줄이 왜 이렇게 유명해졌는지, 그리고 이 비석으로 말할 수 있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 차근차근 짚어 보겠습니다.

카이로 이집트 박물관의 메르넵타 석비. 윗부분 부조 아래로 28행의 상형문자가 이어진다.
사진: 𐰇𐱅𐰚𐰤 /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람세스 2세의 아들이 세운 비석
메르넵타는 고대 이집트 제19왕조의 파라오입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람세스 2세의 아들인데, 아버지가 66년 가까이 왕위에 있었던 탓에 꽤 늦은 나이에야 왕이 되었습니다. 형들이 먼저 세상을 떠난 것도 이유였고요.
석비는 그의 재위 5년, 그러니까 기원전 1208년경의 승리를 기념해 세운 것입니다. 연대표에 따라 1207년으로 보기도 해서 보통 '경'을 붙여 씁니다. 비문 안에 '이스라엘'이 나온다는 이유로 영어권에서는 아예 '이스라엘 석비(Israel Stele)'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1896년, 페트리가 찾아낸 돌
이 비석을 찾은 사람은 영국의 이집트학자 플린더스 페트리입니다. 1896년 나일강 서쪽 테베(지금의 룩소르)에서 메르넵타의 장제전 터를 발굴하던 중이었습니다. 비문을 함께 읽은 독일 학자 빌헬름 슈피겔베르크가 그 안에서 '이스라엘'로 읽히는 이름을 확인했습니다.
재미있는 건 이 돌이 새로 깎은 돌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뒷면을 보면 약 150년 앞선 파라오 아멘호텝 3세의 비문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메르넵타는 선대 왕의 비석을 가져와 반대쪽 면에 자기 이야기를 새긴 셈입니다.

석비 뒷면 윗부분. 원래 아멘호텝 3세의 비문이 있던 면이다.
사진: Onceinawhile /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석비는 지금 카이로의 이집트 박물관에 있고, 소장번호는 JE 31408입니다. 다만 이집트는 최근 몇 년 동안 대규모로 유물을 옮기고 있어서, 직접 보러 가실 분은 출발 전에 전시 위치를 한 번 확인해 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28행 중 단 한 줄
메르넵타 재위 5년, 서쪽의 리비아인들이 동맹 세력과 함께 이집트로 쳐들어옵니다. 메르넵타는 이들을 물리쳤고, 비문의 대부분은 이 승리를 시처럼 길게 노래합니다.
가나안 이야기는 맨 끝 26–28행에 짧게 붙어 있습니다. 미리엄 리히트하임의 영어 번역을 바탕으로 옮겨 보면 이렇습니다.
왕자들은 엎드려 "평화를!" 하고 외치며, 아홉 활(이집트의 적들) 가운데 누구도 고개를 들지 못한다.
테헤누(리비아)는 황폐해졌고, 하티(히타이트)는 평정되었다.
가나안은 온갖 재앙과 함께 약탈당했고, 아스글론은 끌려갔으며, 게셀은 사로잡혔고, 예노암은 없던 것처럼 되었다.
이스라엘은 황폐해졌고 그 씨가 없다.
후루(가나안·시리아 일대)는 이집트 앞에 과부가 되었다.
"이스라엘은 황폐해졌고 그 씨가 없다." 바로 이 문장입니다.
이걸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면 이스라엘이 이때 사라졌다는 이야기가 되지만, 그렇게 읽는 학자는 거의 없습니다. 이집트 왕들의 승전비는 원래 과장이 심합니다. 이스라엘은 그 뒤로도 수백 년을 이어 갔고요. 이 문장에서 눈여겨볼 것은 승리의 크기가 아니라, 이집트가 가나안 땅의 상대 가운데 하나로 '이스라엘'을 이름까지 알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 뒤에 붙은 작은 그림 하나

붉은 선으로 표시한 부분이 '이스라엘(ysrỉꜣr)'이다.
사진: Darer101 /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이 비문이 특히 주목받는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이집트 상형문자에는 '한정사'라는 장치가 있는데, 단어 끝에 소리 없는 그림 기호를 붙여서 이게 사람인지, 땅인지, 물건인지 알려 주는 역할을 합니다. 일종의 꼬리표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같은 대목에 나란히 나오는 이름들의 꼬리표를 비교해 보면 차이가 눈에 띕니다.
| 이름 | 붙어 있는 한정사 | 의미 |
|---|---|---|
| 아스글론, 게셀, 예노암 | 던지는 막대 + 세 개의 언덕 | 외국의 땅이나 도시 |
| 이스라엘 | 던지는 막대 + 앉은 남자와 여자 + 복수 표시 | 외국의 사람들 |
서기관은 아스글론과 게셀은 '도시'로, 이스라엘은 '사람들'로 적었습니다. 당시 이집트 눈에 이스라엘은 성벽 두른 도시국가가 아니라, 가나안 안에 사는 하나의 민족 집단이었다는 뜻입니다.
덧붙이자면 이름 자체는 대략 'ysrỉꜣr'로 옮겨 적습니다. 이집트 문자에는 l 소리를 따로 적는 기호가 없어서 r 계열 기호로 대신 썼다고 흔히 설명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끝소리가 r로 적혀 있습니다.
사사기 1장과 겹쳐 보이는 장면
비문에서 이스라엘과 같이 나오는 게셀은 성경에도 나오는 가나안 도시입니다. 사사기는 이스라엘 지파들이 가나안 사람들을 다 몰아내지 못하고 섞여 살았다고 기록하는데, 게셀이 그 예로 등장합니다.
사사기 1:29 (개역개정)
에브라임이 게셀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지 아니하였으므로 가나안 족속이 게셀에서 그들 중에 거주하였더라
석비가 그리는 가나안도 비슷합니다. 아스글론, 게셀 같은 성읍 국가들 사이에 아직 한 도시로 묶이지 않은 '이스라엘'이라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왕이 세워지기 전 지파 단위로 살던 사사 시대의 모습과 잘 겹쳐 보이는 장면입니다.
그래서 이 비석이 증명하는 것은
여기서 조금 조심스럽게 선을 그어 두고 싶습니다. 이런 유물은 실제보다 크게 소개되는 경우가 많거든요.
메르넵타 석비가 분명히 보여 주는 것은 하나입니다. 기원전 1208년경, 가나안에 이집트가 이름을 알 정도의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이 있었다는 것. 바꿔 말하면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착은 늦어도 이 무렵보다 앞서 일어났어야 합니다.
반대로 이 비석에는 출애굽도, 모세도, 여호수아도 나오지 않습니다. 출애굽이 정확히 언제였는지도 이 비석만으로는 정할 수 없습니다. 실제로 출애굽을 기원전 15세기로 보는 쪽도, 13세기로 보는 쪽도 각자 이 비석을 근거로 들곤 합니다.
몇 가지 덧붙임
공부하다 보면 이런 이야기들도 함께 나옵니다.
- '그 씨'의 뜻: 곡식을 말하는지, 후손을 말하는지 학자들 사이에서 의견이 갈립니다.
- 더 이른 기록이 있다는 주장: 베를린 이집트 박물관의 석주 받침(ÄM 21687)에 메르넵타보다 앞선 '이스라엘' 표기가 있다는 주장이 2001년 이후 나왔습니다. 아직 판독 논쟁이 끝나지 않아서, 메르넵타 석비에는 보통 '가장 널리 인정되는' 최초 기록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 한정사를 얼마나 믿을 수 있나: 이 비문 곳곳에 한정사가 일관되지 않게 쓰인 데가 있어서, 꼬리표 하나로 너무 많은 걸 끌어내면 안 된다는 신중론이 있습니다. 반대로 이 대목만큼은 의도적으로 구분했다고 보는 연구(Hasel, 1994)도 있습니다.
- 카르나크 신전 부조: 카르나크 신전 벽의 전투 장면이 메르넵타의 가나안 원정을 그린 것이고, 거기 이스라엘 사람들도 그려져 있다는 주장(Frank Yurco)도 있습니다. 다만 아직 학계의 정설은 아닙니다.
30초 영상으로 보기
쇼츠로 짧게 정리한 영상도 있습니다.
한눈에 보기
| 항목 | 내용 |
|---|---|
| 유물 | 메르넵타 석비 (Merneptah Stele, '이스라엘 석비') |
| 연대 | 기원전 1208년경 (메르넵타 재위 5년) |
| 발견 | 1896년, 테베(룩소르) 메르넵타 장제전, 플린더스 페트리 |
| 재질·크기 | 흑색 화강암(화강섬록암으로 보기도 함), 높이 약 3.18m |
| 문자 | 이집트 상형문자, 28행 |
| 소장 | 이집트 박물관(카이로), JE 31408 |
| 핵심 구절 | 27행 "이스라엘은 황폐해졌고 그 씨가 없다" |
| 함께 읽을 성경 | 사사기 1장 |
참고한 자료
- M. Lichtheim, Ancient Egyptian Literature, Vol. II (1976), pp. 73–78
- J. B. Pritchard (ed.), Ancient Near Eastern Texts, 3rd ed. (1969), pp. 376–378
- M. G. Hasel, "Israel in the Merneptah Stela," BASOR 296 (1994)
사진 출처: ① 𐰇𐱅𐰚𐰤, "Merneptah Steli (cropped).jpg" ② Onceinawhile, "Merneptah Stele 2022 (reverse side, top).jpg" ③ Darer101, "Closeup of Merneptah Stele, with "ysrir" reference in red.png" (모두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이스라엘을 이겼다고 자랑하려고 새긴 문장이, 3,200년이 지난 지금은 그 이스라엘이 실제로 그 땅에 있었다는 가장 오래된 증언이 되었습니다. 돌을 세운 파라오는 아마 상상도 못 했겠지요.
다음 글에서는 '다윗의 집'이라는 여섯 글자가 새겨진 텔 단 석비를 다룹니다.
'[유물] 성경 역사 고고학 검증'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고레스 원통, 바벨론을 정복한 페르시아 왕은 정말 포로들을 고향으로 돌려보냈을까 (0) | 2026.10.24 |
|---|---|
| 히스기야 터널과 실로암 비문, 2,700년 전 바위 양쪽에서 판 두 팀은 어떻게 만났을까 (0) | 2026.10.24 |
| 테일러 프리즘, 앗시리아 왕 산헤립은 왜 예루살렘 함락을 적지 못했을까 (0) | 2026.10.24 |
| 메샤 석비(모압 석비), 성경 밖에서 '여호와'의 이름이 처음 확인된 비석 (0) | 2026.10.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