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에는 날짜가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바울이 언제 회심했는지, 몇 년에 어느 도시에 도착했는지, 사도행전은 친절하게 연도를 적어 주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성경 연대표를 보면 "바울의 고린도 체류: 서기 50~52년경" 같은 숫자가 꽤 자신 있게 적혀 있습니다.
이 숫자는 어디서 왔을까요? 가장 중요한 단서는 성경 밖, 그리스 델포이에서 나온 깨진 돌 조각들에 있습니다. 로마 황제가 보낸 편지가 새겨진 돌, 흔히 갈리오 비문이라고 부르는 유물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이 비문에 무엇이 적혀 있는지, 거기서 어떻게 연도를 계산해 내는지, 그리고 그 계산이 얼마나 확실한지 차례로 살펴보겠습니다.

고대 고린도 로마 포럼 한가운데의 베마(연단). 사도행전 18장의 재판 장소로 전해지는 곳이다.
사진: George E. Koronaios / Wikimedia Commons, CC0
고린도에서 생긴 일
사도행전 18장에 따르면 바울은 아덴(아테네)을 거쳐 고린도에 와서 1년 6개월을 머물렀습니다(18:11). 천막 만드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의 집에 머물며 일했고, 회당에서 가르쳤습니다.
그러다 이런 일이 벌어집니다.
사도행전 18:12 (개역개정)
갈리오가 아가야 총독 되었을 때에 유대인이 일제히 일어나 바울을 대적하여 법정으로 데리고 가서
유대인들은 바울이 율법에 어긋나게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사람들을 부추긴다고 고발합니다. 그런데 총독 갈리오는 이것이 범죄가 아니라 유대인들 사이의 말과 율법 문제라며 재판 자체를 거절해 버립니다(18:14–16, 요지).
여기서 눈여겨볼 대목은 "갈리오가 아가야 총독 되었을 때"라는 표현입니다. 로마의 속주 총독은 보통 1년씩 돌아가며 맡았습니다. 갈리오가 언제 총독이었는지 알 수 있다면, 바울이 고린도에 있었던 때도 알 수 있게 됩니다.
갈리오는 누구였나
루키우스 유니우스 갈리오는 꽤 유명한 집안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동생이 바로 로마의 스토아 철학자이자 네로의 스승이었던 세네카입니다. 원래 이름은 마르쿠스 안나이우스 노바투스였는데, 갈리오라는 원로원 의원의 양자로 들어가면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세네카는 글에서 형이 아가야에 있을 때 열병에 걸려 배를 타고 떠났다는 이야기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사도행전의 짧은 장면 속 총독이 로마 상류층의 실제 인물이었다는 건 이런 기록들로도 확인됩니다.
델포이에서 나온 황제의 편지

갈리오의 이름이 남은 비문 조각. 파란 사각형은 원 사진가가 이름 부분에 표시한 것이다.
사진: Gérard /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델포이는 아폴로 신탁으로 유명한 그리스의 성지입니다. 19세기 말부터 프랑스 고고학자들이 이곳을 발굴했고, 아폴로 신전 근처에서 글씨가 새겨진 석회암 조각들이 나왔습니다. 1905년 에밀 부르게가 그중 네 조각을 묶어 처음 학계에 알렸고, 이후 조각이 더해져 지금은 아홉 조각 정도로 복원됩니다.
내용은 클라우디우스 황제가 델포이 문제에 관해 보낸 편지입니다. 인구가 줄어든 델포이에 다른 도시 사람들을 이주시키라는 취지로 읽힙니다. 그리고 그 6행에 이런 이름이 나옵니다.
[Λού]κιος Ἰούνιος Γαλλίων ὁ [φίλος] μου κα[ὶ ἀνθύπατος τῆς Ἀχαΐας]
"나의 벗이자 아가야 총독인 루키우스 유니우스 갈리오"
괄호 안은 깨져 나간 부분을 학자들이 복원한 것입니다. '벗'과 '아가야 총독'은 복원이지만, 갈리오라는 이름(ΓΑΛΛΙΩΝ)은 돌 위에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연도는 어떻게 계산할까
비문의 첫머리에는 황제의 칭호가 줄줄이 적혀 있는데, 그중에 "26번째로 임페라토르라 불리는"이라는 표현이 들어 있습니다. 로마 황제는 군사적 승리가 있을 때마다 군대로부터 '임페라토르' 환호를 받았고, 그 횟수를 칭호에 붙였습니다. 즉위한 횟수가 아니라 승리의 환호를 받은 횟수입니다.
클라우디우스가 25번째, 26번째, 27번째 환호를 받은 시점은 다른 비문들과 비교해서 꽤 좁힐 수 있습니다. 학자들의 계산으로는 26번째 환호가 서기 52년 1월에서 8월 사이에 해당합니다. 편지는 그 기간에 쓰였다는 뜻입니다.
편지에서 갈리오가 현직 총독으로 언급되거나 막 임기를 마친 것으로 보이니, 그의 임기는 서기 51년 여름부터 52년 여름까지였을 가능성이 가장 높습니다. 원로원 속주 총독은 대개 초여름에 부임해 1년을 근무했습니다.
바울 연대표의 기준점
이렇게 갈리오의 임기가 서기 51~52년경으로 잡히면, 바울의 고린도 체류는 대략 서기 50년에서 52년 사이로 맞춰집니다.
이 연도 하나가 생각보다 큰 역할을 합니다. 바울의 생애는 이 점을 기준으로 앞뒤로 계산됩니다. 갈라디아서에 나오는 "십사 년 후에" 같은 표현, 1·2·3차 전도 여행의 순서, 데살로니가전서처럼 고린도에서 쓴 것으로 보이는 편지의 연대까지 모두 이 기준점에 기대어 정해집니다. 그래서 갈리오 비문은 신약 연대학에서 가장 중요한 고정점으로 꼽힙니다.
참고로 사도행전 18:2에는 클라우디우스가 모든 유대인을 로마에서 떠나라고 명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추방령은 보통 서기 49년경으로 봅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고린도에 막 도착해 있었다는 사도행전의 기록과도 시간 순서가 잘 맞습니다.
얼마나 확실한 숫자일까
다만 "완벽하게 확정되었다"고까지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갈리오의 임기를 서기 52~53년으로 보는 소수 의견이 있습니다. 비문이 깨져 있어서 편지의 수신자가 누구인지, 갈리오가 편지를 쓸 때 현직이었는지 전임이었는지에 대해 해석이 조금씩 갈리기 때문입니다. 또 바울이 갈리오 임기 중 언제 재판을 받았는지도 사도행전만으로는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 비문이 주는 건 정확한 하루가 아니라 1~2년 폭의 범위입니다. 그래도 고대사에서 이 정도면 대단히 정밀한 편입니다. 다른 대부분의 신약 사건은 이만큼도 좁히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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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눈에 보기
| 항목 | 내용 |
|---|---|
| 유물 | 갈리오 비문 (델포이 비문) |
| 연대 | 서기 52년경 (클라우디우스 26번째 임페라토르 환호 시기) |
| 발견 | 델포이 아폴로 신전 부근, 1905년 부르게가 처음 공개 |
| 언어 | 그리스어 |
| 핵심 | 6행 "루키우스 유니우스 갈리오 … [아가야 총독]" |
| 소장 | 그리스 델포이 고고학 박물관 |
| 함께 읽을 성경 | 사도행전 18:1–17 |
참고한 자료
- É. Bourguet, De rebus Delphicis imperatoriae aetatis capita duo (1905)
- A. Plassart, "L'inscription de Delphes mentionnant le proconsul Gallion," Revue des Études Grecques 80 (1967)
- J. Murphy-O'Connor, St. Paul's Corinth: Texts and Archaeology, 3rd ed. (2002)
사진 출처: ① George E. Koronaios, "The rostra (Bema) in the Roman forum of the Ancient Corinth on 6 April 2019.jpg", Wikimedia Commons, CC0 ② Gérard, "Delphes Gallion.jpg",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사도행전의 저자는 갈리오를 지나가는 인물로만 그렸습니다. 재판을 귀찮아하며 돌려보낸 총독 한 명. 그런데 그 한 줄이 델포이의 깨진 돌과 만나면서, 바울의 생애 전체에 연도를 붙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난 글의 가야바 유골함이 복음서 속 인물의 이름을 보여 줬다면, 이번 비문은 사도행전 속 사건의 시간을 알려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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