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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 성경 실존 인물 검증

에라스도 비문, 고린도 광장 바닥의 '에라스투스'는 로마서의 그 재무관일까

by Bible Proven 2026. 10. 30.

로마서 16장은 성경에서 가장 '사람 냄새' 나는 장 가운데 하나입니다. 바울은 편지를 마무리하면서 로마에 있는 수십 명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안부를 전하고, 끝에는 자기 곁에 있는 사람들의 인사까지 덧붙입니다. 더디오, 가이오, 구아도, 그리고 에라스도.

 

그 에라스도에게는 '이 성의 재무관'이라는 직함이 붙어 있습니다. 바울이 이 편지를 쓴 곳은 그리스의 고린도였지요. 그런데 고린도 유적에는 실제로 '에라스투스'라는 이름이 새겨진 돌이 바닥에 깔려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이 비문이 무엇을 말하는지, 그리고 로마서의 에라스도와 같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학자들 사이의 논쟁까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고대 고린도 극장 동쪽 광장의 포장석들. 비문이 새겨진 돌도 이 바닥의 일부다.
사진: Ktiv /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로마 식민도시 고린도

바울 시대의 고린도는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그리스 도시'와 조금 달랐습니다. 옛 그리스 도시 고린도는 기원전 146년 로마군에게 철저히 파괴되었고, 100년 가까이 폐허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다 기원전 44년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이곳을 로마 시민을 위한 식민도시로 다시 세웠습니다.

 

그래서 1세기 고린도는 행정 체계도 로마식이었고, 공공 비문도 대부분 라틴어로 썼습니다. 해마다 선출하는 두 명의 최고 정무관(두오비리)이 있었고, 그 아래에 도로와 시장, 공공건물을 맡는 조영관(아이딜리스) 두 명이 있었습니다.

극장 옆 광장에서

1929년, 고대 고린도를 발굴하던 미국 고전학연구소 팀은 극장 동쪽에 깔린 돌바닥 광장을 정리하다가 커다란 글자가 새겨진 석회암 판을 발견했습니다. 멀리서도 읽힐 만큼 큼직한 글자였고, 홈 안쪽에는 원래 청동으로 만든 글자를 박아 넣었던 흔적이 있습니다. 햇빛을 받으면 바닥에서 금빛 글자가 반짝였을 겁니다.

비문 근접 사진. 왼쪽 끝 첫 글자는 깨져 나갔다.
사진: Rduncan2 /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남아 있는 글자는 두 줄입니다.

[…] ERASTVS PRO AED(ILITATE)
S(VA) P(ECVNIA) STRAVIT
"에라스투스가 조영관 직을 맡은 답례로 자기 돈을 들여 (이곳을) 포장했다."

 

로마 도시에서는 공직에 선출된 사람이 감사의 표시로 공공시설을 지어 바치는 일이 흔했습니다. 에라스투스는 조영관으로 뽑힌 답례로 광장 포장 공사를 자비로 했고, 그 사실을 바닥에 새겨 남긴 것입니다. 이름 앞부분, 그러니까 로마식 이름의 개인명과 씨족명이 있었을 자리는 깨져서 알 수 없습니다.

로마서의 에라스도

로마서 16:23 (개역개정)
나와 온 교회를 돌보아 주는 가이오도 너희에게 문안하고 이 성의 재무관 에라스도와 형제 구아도도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바울은 3차 전도 여행 중 고린도에 머물던 서기 57년 무렵 로마서를 썼다고 봅니다. '이 성의 재무관'으로 번역된 그리스어는 '오이코노모스 테스 폴레오스', 직역하면 '도시의 관리인'입니다.

 

사도행전 19:22에는 바울이 에베소에서 디모데와 에라스도를 마게도냐로 보냈다는 기록이 있고, 디모데후서 4:20에는 "에라스도는 고린도에 머물러 있고"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들이 모두 같은 사람인지도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같은 사람일까, 논쟁의 쟁점

같은 도시, 비슷한 시기, 같은 이름, 그리고 둘 다 도시의 관직. 이렇게 놓고 보면 같은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어집니다. 실제로 데이비드 길(D. W. J. Gill)이나 게르트 타이센(G. Theissen) 같은 학자들은 그 가능성을 높게 봤습니다. 타이센은 로마서의 '오이코노모스'가 조영관이 되기 전 단계의 직책이었을 수 있다고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첫째, 직책 문제입니다. '오이코노모스'는 그리스어 비문에서 흔히 도시의 재정 관리인을 가리키는데, 때로는 노예나 해방 노예가 맡는 비교적 낮은 직책이기도 했습니다. 이것이 선출직 정무관인 조영관과 같은 자리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지적입니다.

 

둘째, 연대 문제입니다. 비문을 처음 정리한 켄트(J. H. Kent)는 1세기 중반으로 봤지만, 스티븐 프리즌(S. J. Friesen)은 2010년 논문에서 주변 포장 공사와 글자 모양을 근거로 2세기로 늦춰 봐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경우 바울과는 시대가 맞지 않습니다.

 

셋째, 에라스투스라는 이름 자체가 아주 드문 이름은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지금 말할 수 있는 정직한 결론은 이 정도입니다. 고린도에는 '에라스투스'라는 이름의 부유한 관리가 있었고, 그가 로마서의 에라스도일 가능성은 열려 있지만 확정되지는 않았다는 것. 영상에서도 이 부분은 "아직 논쟁 중"이라고 분명히 밝혔습니다.

38초 영상으로 보기

쇼츠로 짧게 정리한 영상입니다.

한눈에 보기

항목 내용
유물 에라스도 비문 (Erastus Inscription)
연대 서기 1세기 중반 (2세기 설도 있음)
발견 1929년, 고대 고린도 극장 동쪽 광장
언어 라틴어, 원래 청동 글자를 박아 넣음
내용 에라스투스가 조영관 직의 답례로 자비로 포장함
위치 그리스 고대 고린도 유적 (현장)
함께 읽을 성경 로마서 16:23, 사도행전 19:22, 디모데후서 4:20

 

참고한 자료

  • J. H. Kent, Corinth VIII.3: The Inscriptions 1926–1950 (Princeton, 1966), no. 232
  • D. W. J. Gill, "Erastus the Aedile," Tyndale Bulletin 40 (1989)
  • S. J. Friesen, "The Wrong Erastus: Ideology, Archaeology, and Exegesis," in Corinth in Context (Brill, 2010)
  • G. Theissen, The Social Setting of Pauline Christianity (1982)

 

사진 출처: ① Ktiv, "Erastus Inschrift.jpg",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② Rduncan2, "Erastus stone at Theater of Corinth (cropped).jpg",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바울의 편지 끝에 지나가듯 적힌 이름 하나가 고린도의 광장 바닥과 만나면서, 1세기 고린도 교회에 어떤 사람들이 있었는지에 대한 상상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만들어 줍니다. 노예와 장인, 그리고 어쩌면 도시의 관리까지 한 공동체 안에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지난번 갈리오 비문에서 고린도의 총독을 만났다면, 이번에는 같은 도시의 관리를 만나 본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