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료] 성경 실존 인물 검증

빌라도 비석, 사도신경 속 '본디오 빌라도'의 이름이 새겨진 돌

by Bible Proven 2026. 10. 24.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사도신경을 외워 본 분이라면 익숙한 구절입니다. 그런데 한 번쯤 이상하다고 느끼신 적은 없나요? 짧은 신앙고백 안에 이름이 나오는 사람은 예수님과 마리아, 그리고 로마의 유대 총독 본디오 빌라도뿐입니다.

 

빌라도의 이름이 거기 들어간 데에는 이유가 있다고들 합니다. 예수님의 죽음이 '옛날 옛적' 이야기가 아니라, 특정 총독이 다스리던 특정 시기에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는 걸 못 박아 두는 역할이라는 거죠. 그렇다면 그 총독의 흔적은 돌에도 남아 있을까요? 1961년, 그 답이 나왔습니다.

이스라엘 박물관의 빌라도 비석 원본. 가이사랴 현장에 있는 것은 복제품이다.
사진: Carole Raddato / Wikimedia Commons, CC BY-SA 2.0

극장 계단에 박혀 있던 돌

가이사랴 마리티마는 헤롯 대왕이 지중해 연안에 세운 항구 도시입니다. 서기 6년 유대가 로마의 직할 속주가 된 뒤로는 로마 총독이 머무는 행정 중심지였습니다. 사도행전에서 베드로가 백부장 고넬료를 만난 곳(10장)도, 바울이 2년 동안 갇혀 지낸 곳(23–26장)도 이 도시입니다.

 

1961년, 이탈리아 고고학자 안토니오 프로바가 이끄는 발굴팀이 이곳의 로마 극장을 조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계단에 끼워져 있던 석회암 판석 하나에서 라틴어 글자를 발견합니다.

 

알고 보니 원래는 총독이 세운 건물에 붙어 있던 봉헌 비문이었습니다. 수백 년 뒤 극장을 고치면서 누군가 이 돌을 계단 돌로 다시 쓴 겁니다. 그 과정에서 왼쪽이 깎여 나가 일부 글자가 사라졌습니다. 원본은 지금 예루살렘 이스라엘 박물관에 있고, 가이사랴 극장에는 복제품이 놓여 있습니다.

남아 있는 네 줄

비문 클로즈업. 윗줄부터 …S TIBERIEVM / …TIVS PILATVS / …ECTVS IVDA… 순서로 읽힌다.
사진: BRBurton / Wikimedia Commons, CC0

 

비문은 네 줄이고, 대괄호 [ ] 안은 학자들이 복원한 글자입니다. 가장 널리 쓰이는 판독은 이렇습니다.

행 판독 뜻
1 [ … ]S TIBERIEVM (…에게) 티베리에움을
2 [PON]TIVS PILATVS 본디오 빌라도
3 [PRAEF]ECTVS IVDA[EA]E 유대의 총독
4 [ … ] (봉헌하였다 등으로 복원)

 

고대 라틴어 비문은 U를 V로 새겼기 때문에 PILATUS가 PILATVS로 적혀 있습니다.

 

1행의 티베리에움은 당시 황제 티베리우스의 이름을 딴 건물입니다. 어떤 건물이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황제를 기리는 신전이나 공공건물로 보는 견해가 많고, 항구의 등대였다고 보는 학자도 있습니다.

 

2행에서 빌라도의 이름 PILATVS는 온전히 남아 있습니다. 성씨 PONTIVS는 앞부분이 깨져서 [PON]을 채워 넣어 읽습니다.

 

3행은 '유대의 총독'이라는 공식 직함입니다. 앞부분과 뒷부분 일부가 복원이긴 하지만, 남아 있는 ECTVS와 IVDA만으로도 무슨 직함인지 알아볼 수 있습니다.

 

정리하면, 이 비석은 "유대 총독 본디오 빌라도가 티베리우스를 기리는 건물을 봉헌했다"는 내용으로 이해됩니다.

프로쿠라토르가 아니라 프라이펙투스

학자들이 이 비석에서 특히 주목한 건 3행의 직함이었습니다.

 

로마 역사가 타키투스는 『연대기』에서 빌라도를 '프로쿠라토르(procurator)'라고 불렀습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빌라도의 직함은 프로쿠라토르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빌라도 시대의 돌에는 '프라이펙투스(praefectus)'라고 새겨져 있었던 겁니다.

 

학자들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서기 1세기 초 유대를 맡은 기사 계급 총독의 공식 명칭은 군사 지휘권이 강조된 프라이펙투스였습니다. 서기 44년 이후 유대 총독의 명칭이 프로쿠라토르로 바뀌었고, 그보다 늦게 글을 쓴 타키투스는 자기 시대의 용어로 빌라도를 부른 것이죠. 빌라도 비석은 당대의 정확한 직함을 알려 준 1차 사료로 평가받습니다.

 

신약 성경은 빌라도를 그리스어로 '헤게몬', 곧 '다스리는 자, 총독'이라는 일반적인 말로 부릅니다(마태복음 27:2 등). 공식 직함이 아니라 일반 명칭이라서 비석과 부딪치지 않습니다.

성경과 옛 기록 속 빌라도

네 복음서는 모두 빌라도를 예수님의 재판을 맡은 로마 총독으로 기록합니다(마태복음 27장, 마가복음 15장, 누가복음 23장, 요한복음 18–19장).

마가복음 15:15 (개역개정)
빌라도가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하여 바라바는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누가복음 3:1은 세례 요한이 활동을 시작한 때를 '디베료(티베리우스) 황제가 다스린 지 열다섯 해,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 총독으로 있을 때'라고 적습니다(요지). 비석 1행의 티베리우스와 2–3행의 '유대 총독 빌라도'가 이 구절의 시대 정보와 그대로 겹칩니다.

 

사실 빌라도는 이 비석이 나오기 전에도 여러 고대 기록으로 알려진 인물이었습니다.

 

1세기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는 빌라도가 황제의 형상이 그려진 군기를 예루살렘에 들여와 큰 소동이 났던 일, 성전 기금으로 수로를 지으려다 시위가 일어나자 진압했던 일 등을 기록했습니다. 빌라도는 결국 사마리아에서 일어난 사건 이후 시리아 총독 비텔리우스의 명으로 로마로 불려 갔습니다(서기 36/37년경).

 

알렉산드리아의 유대 철학자 필론은 빌라도가 예루살렘 헤롯 궁에 황제에게 바친 방패를 걸었다가 유대인들과 부딪친 일을 전합니다. 그리고 로마 역사가 타키투스는 『연대기』 15.44에서 그리스도가 티베리우스 치세에 총독 본디오 빌라도에 의해 처형되었다고 씁니다.

 

그래서 이 부분은 분명히 해 두고 싶습니다. 주류 학계가 빌라도의 실존을 부정했던 적은 없습니다. 빌라도 비석의 의미는 '없다던 인물을 찾아냈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문헌으로만 알던 인물을, 그가 활동하던 시대의 돌에 새겨진 이름과 직함으로 처음 확인했다는 데 있습니다.

 

덧붙이면 2018년에는 헤로디움에서 나온 구리 반지에 'Pilatus'라는 글자가 새겨진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다만 그 반지가 총독 본인의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빌라도의 이름과 직함을 함께 담은 동시대 비문은 지금까지 이 비석 하나뿐입니다.

37초 영상으로 보기

쇼츠로 짧게 정리한 영상입니다.

한눈에 보기

항목 내용
유물 빌라도 비석 (Pilate Stone)
연대 서기 26–36년경 (빌라도 재임기)
발견 1961년, 가이사랴 마리티마 로마 극장(계단석으로 재사용), 안토니오 프로바 발굴팀
재질·언어 석회암, 라틴어 4행(일부 소실)
소장 이스라엘 박물관(예루살렘), 현장에는 복제품
핵심 구절 2행 [PON]TIVS PILATVS, 3행 [PRAEF]ECTVS IVDA[EA]E
함께 읽을 성경 4복음서 재판 기사, 누가복음 3:1

 

참고한 자료

  • 요세푸스, 『유대 고대사』 18.55–64, 18.85–89 · 『유대 전쟁사』 2.169–177
  • 필론, 『가이우스에게 보낸 사절』 299–305
  • 타키투스, 『연대기』 15.44

 

사진 출처: ① Carole Raddato, "Dedicatory inscription … Israel Museum, Jerusalem", Wikimedia Commons, CC BY-SA 2.0 ② BRBurton, "Pontius Pilate Inscription.JPG", Wikimedia Commons, CC0


 

사도신경의 빌라도는 신앙고백 속에만 있는 이름이 아닙니다. 2,000년 전 그가 세운 건물의 돌에 그 이름과 직함이 새겨져 있고, 그 돌은 지금도 예루살렘의 박물관에 서 있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앗시리아 왕 산헤립이 예루살렘 앞에서 멈춰 선 이야기를 담은 테일러 프리즘을 다룹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