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539년 가을의 바벨론은 그때 세상에서 가장 크고 단단한 도시로 꼽혔습니다. 이중 성벽과 해자, 도시 한가운데를 흐르는 유프라테스 강까지 갖춘 곳이었으니까요. 다니엘서 5장은 그 도시가 넘어가던 마지막 밤을 왕궁의 잔치 자리에서부터 보여 줍니다.
성경 본문을 따라가면서 점토판과 원통, 그리스 역사가들의 기록이 이 밤에 대해 무엇을 말하는지 하나씩 맞춰 보려고 합니다.
잔치를 연 사람, 벨사살
다니엘 5:1 (개역개정)
벨사살 왕이 그의 귀족 천 명을 위하여 큰 잔치를 베풀고 그 천 명 앞에서 술을 마시니라
벨사살이라는 이름은 오랫동안 다니엘서 말고는 나오는 곳이 없었습니다. 그리스 역사가들이 전하는 바벨론의 마지막 왕은 나보니두스였기 때문에, 19세기 초까지는 벨사살을 두고 실제 인물이 맞느냐는 의문이 꽤 있었습니다.
1854년, 남부 이라크의 우르에서 나보니두스가 달의 신 신(Sin)의 지구라트를 고친 일을 적은 점토 원통들이 나왔습니다. 원통 끝부분의 기도문에 왕이 자기 맏아들 벨사살을 지켜 달라고 비는 대목이 있습니다. 성경 밖에서 벨사살의 이름이 처음 확인된 순간이었습니다.

우르에서 나온 나보니두스 원통. 아들 벨사살을 위한 기도가 적혀 있다. 대영박물관.
사진: Osama Shukir Muhammed Amin FRCP(Glasg) /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그 뒤에 읽힌 다른 기록들은 그림을 더 또렷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나보니두스는 재위 중 여러 해를 아라비아의 오아시스 도시 테마에서 보냈고, 그동안 바벨론에는 왕세자가 머물렀습니다. 나보니두스를 다룬 한 운문 문서는 그가 "맏아들에게 왕권을 맡겼다"고 적고 있습니다. 공식 칭호는 왕세자였지만, 실제로 바벨론을 다스린 사람이 벨사살이었던 셈입니다.
왜 셋째 통치자였을까
벽에 글씨가 나타나자 벨사살은 이 글을 읽는 사람에게 자주색 옷과 금 사슬을 주고 나라의 셋째 통치자로 삼겠다고 합니다. 왕이 내걸 수 있는 상으로는 조금 이상하게 들립니다. 왜 둘째가 아니었을까요.
나보니두스가 첫째, 벨사살 자신이 둘째였다면 줄 수 있는 가장 높은 자리가 셋째였다는 설명이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다니엘서가 따로 풀어 주지 않는 작은 표현인데, 점토판 기록과 나란히 놓으면 자연스럽게 맞물립니다.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
다니엘 5:25 (개역개정)
기록된 글자는 이것이니 곧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
바벨론의 지혜자들이 아무도 읽지 못한 이 글은 아람어입니다. 낱말 자체는 어렵지 않습니다. 메네는 무게 단위 므나, 데겔은 세겔, 바르신(베레스)은 반쪽이라는 뜻과 닿아 있다고 보는 해석이 많습니다. 그래서 단어만 늘어놓으면 "므나, 므나, 세겔, 반 므나"처럼 들려서, 무슨 말인지 알기 어려웠을 것으로 봅니다.
다니엘은 이 단어들을 동사로 풀었습니다.
다니엘 5:26–28 (개역개정)
그 글을 해석하건대 메네는 하나님이 이미 왕의 나라의 시대를 세어서 그것을 끝나게 하셨다 함이요
데겔은 왕을 저울에 달아 보니 부족함이 보였다 함이요
베레스는 왕의 나라가 나뉘어서 메대와 바사 사람에게 준 바 되었다 함이니이다 하니
세었다, 달았다, 나뉘었다. 베레스라는 말은 바사, 곧 페르시아의 이름과도 소리가 닮아 있어서 이중의 뜻이 담겼다고 읽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렘브란트는 이 장면을 그리면서 글자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지 않고 세로줄로 배치했습니다. 암스테르담에서 가깝게 지낸 랍비 므낫세 벤 이스라엘에게서 얻은 생각으로 보이는데, 므낫세는 1639년에 낸 책에서 같은 배열을 소개하며 지혜자들이 글을 읽지 못한 까닭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그림이 그려진 시기가 1635~38년경이니, 책보다 대화가 먼저였을 것입니다.
여든 무렵의 다니엘
다니엘서 1장은 다니엘이 유다 왕 여호야김 3년, 기원전 605년 무렵에 바벨론으로 끌려왔다고 전합니다. 이 밤까지 약 66년이 흐른 셈입니다. 성경은 다니엘의 나이를 직접 적지 않지만, 끌려올 때 소년이었다면 이 밤에는 여든 안팎이었을 것으로 짐작합니다.
왕비의 말을 듣고 불려 온 노인은 왕의 예물을 사양했고, 해석을 전하기 전에 왕이 성전 그릇으로 술을 마시며 사람이 만든 신들을 찬양한 일을 먼저 짚었습니다. 그 그릇들은 육십여 년 전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가져온 것이었습니다.
그 밤에 무슨 일이 있었나
다니엘 5:30 (개역개정)
그 날 밤에 갈대아 왕 벨사살이 죽임을 당하였고
성경의 기록은 짧습니다. 바벨론 쪽 기록인 바빌로니아 연대기(나보니두스 연대기)도 이 무렵의 일을 날짜와 함께 남겼습니다. 고레스는 티그리스 강가의 오피스에서 바벨론 군대를 무찔렀고, 이어 시파르를 싸움 없이 얻었습니다. 기원전 539년 10월 12일에는 고레스의 군대가 큰 전투 없이 바벨론에 들어갔고, 고레스 자신은 열이레 뒤인 10월 29일에 성에 들어왔습니다.

바빌로니아 연대기(나보니두스 연대기). 바벨론이 고레스에게 넘어간 과정이 적혀 있다. 대영박물관.
사진: Osama Shukir Muhammed Amin FRCP(Glasg) /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난공불락의 성벽이 어떻게 열렸는지에 대해서는 그리스 쪽 이야기가 유명합니다. 헤로도토스는 『역사』 1권에서 페르시아 군이 유프라테스 강물을 다른 곳으로 돌려 물이 얕아지자 강이 성 안으로 흘러드는 길을 따라 들어갔고, 그때 성 안 사람들은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고 적었습니다. 크세노폰도 『키루스의 교육』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남겼습니다.
다만 이 강줄기 이야기는 그리스 쪽 기록에만 나옵니다. 바빌로니아 연대기에는 그런 내용이 없고, 고고학으로 확인된 것도 아니어서 학자들 사이에서도 실제 있었던 일인지 의견이 갈립니다. 여러 기록이 함께 가리키는 것은 하나입니다. 큰 싸움 없이, 하룻밤 사이에 바벨론의 주인이 바뀌었다는 점입니다.
고레스 원통이 말하는 것
1879년, 바벨론 유적에서 손에 쥘 만한 크기의 점토 원통 하나가 나왔습니다. 지금 대영박물관에 있는 고레스 원통입니다. 원통에서 고레스는 바벨론의 신 마르둑이 자신을 싸움 없이 바벨론에 들어가게 했다고 말하고, 다른 땅에서 옮겨 온 신상들을 제자리로 돌려보내며 그 백성들을 모아 고향으로 돌아가게 했다고 적습니다.

고레스 원통. 1879년 바벨론에서 출토. 대영박물관.
사진: Prioryman / Wikimedia Commons, CC BY-SA 3.0
이 원통에 유다나 예루살렘이라는 이름은 나오지 않습니다. 고레스가 자신을 높이려고 만든 선전 문서라는 점도 감안해야 합니다. 그래도 포로로 잡혀 온 민족을 돌려보낸 정책은 에스라서가 전하는 고레스의 칙령과 같은 방향을 가리킵니다.
에스라 1:2 (개역개정)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세상 모든 나라를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에스라서는 이어서 고레스가 느부갓네살이 가져갔던 성전 그릇들을 꺼내 돌려보냈다고 전합니다(에스라 1:7–11). 벨사살의 잔치에서 술잔이 되었던 그 그릇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한 제국이 넘어간 밤과 포로들이 돌아갈 길이 열린 일이 이렇게 이어집니다.
한눈에 보기
| 항목 | 내용 |
|---|---|
| 시기 | 기원전 539년 10월 |
| 주요 인물 | 벨사살, 나보니두스, 다니엘, 고레스 |
| 관련 유물 | 나보니두스 원통(우르, 대영박물관), 바빌로니아 연대기(대영박물관), 고레스 원통(대영박물관) |
| 그리스 쪽 기록 | 헤로도토스 『역사』 1.191, 크세노폰 『키루스의 교육』 7.5 |
| 함께 읽을 성경 | 다니엘 1장, 5장, 에스라 1장 |
참고한 자료
- A. K. Grayson, Assyrian and Babylonian Chronicles (1975), Chronicle 7 (나보니두스 연대기)
- J. B. Pritchard (ed.), Ancient Near Eastern Texts Relating to the Old Testament (Princeton, 1969), 312–316 (고레스 원통, 나보니두스 운문 기록)
- R. P. Dougherty, Nabonidus and Belshazzar (Yale, 1929)
- I. Finkel (ed.), The Cyrus Cylinder (I.B. Tauris, 2013)
사진 출처: ① Osama Shukir Muhammed Amin FRCP(Glasg),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② Osama Shukir Muhammed Amin FRCP(Glasg),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③ Prioryman, "Cyrus Cylinder front.jpg", Wikimedia Commons, CC BY-SA 3.0
본문의 성경 인용은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대한성서공회 1998)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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