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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 성경 역사 고고학 검증

산헤립의 라기스 부조, 성경에 이름이 나오는 도시의 함락을 궁전 벽에 새기다

by Bible Proven 2026. 11. 2.

런던 대영박물관에는 방 하나를 통째로 채운 돌 부조가 있습니다. 오가는 사람이 많은 전시실인데도, 그 앞에 서면 한동안 말이 줄어듭니다. 성을 기어오르는 병사들, 불타는 성벽, 줄지어 끌려가는 사람들이 벽을 따라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이 부조가 그리고 있는 도시의 이름은 라기스입니다. 성경에도 나오는 이름이지요. 이번 글에서는 이 부조가 어디서 나왔고 무엇을 보여 주는지, 그리고 성경의 어느 대목과 닿아 있는지 차분히 살펴보겠습니다.

대영박물관에 전시된 라기스 부조의 한 부분.
사진: Mike Peel /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니네베 궁전의 한 방

이 부조는 앗시리아의 수도 니네베에서 나왔습니다. 1840년대 후반 영국의 오스틴 헨리 레이어드가 이끈 발굴단이 산헤립 왕의 '남서궁전'을 파 들어가다가 한 방의 벽면을 따라 늘어선 돌판들을 찾아냈습니다. 지금은 이 방을 흔히 '라기스 방'이라고 부릅니다. 돌판들은 영국으로 옮겨져 대영박물관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제작 시기는 기원전 700년에서 692년 무렵으로 봅니다. 산헤립이 유다를 침공한 것이 기원전 701년이니, 전쟁이 끝난 직후에 궁전을 꾸미려고 만든 기념 그림인 셈입니다.

 

부조에는 성벽을 둘러싼 앗시리아 궁수와 투석병, 성벽으로 다가가는 공성 장치, 성 안에서 맞서는 사람들, 성이 무너진 뒤 가족 단위로 끌려가는 사람들, 그리고 왕좌에 앉아 이 모든 것을 지켜보는 왕이 차례로 나옵니다.

도시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그림만 있다면 이것이 어느 도시인지 알 길이 없을 텐데, 다행히 왕좌 곁에 짧은 설형문자 설명문이 남아 있습니다.

왕좌와 그 곁의 설형문자 설명문.
사진: oncenawhile / Wikimedia Commons, CC BY-SA 3.0

설명문 (아카드어)
세상의 왕, 앗시리아의 왕 산헤립이 왕좌에 앉아 라기스에서 빼앗은 전리품을 점검했다.
(도시 이름은 La-ki-su, 곧 라기스)

 

학자들은 이 설명문 덕분에 부조 속 도시를 라기스로 확정합니다. 여기서는 번역본마다 표현이 조금씩 다르다는 점만 짚어 두겠습니다. 도시 이름과 '전리품을 점검한다'는 요지는 어느 번역에서든 같습니다.

성경은 라기스를 이렇게 말합니다

라기스는 예루살렘 남서쪽 약 40킬로미터, 유다 구릉지대에 있던 요새 도시였습니다. 산헤립이 유다를 칠 때 가장 공을 들인 곳이 바로 이 도시였지요.

열왕기하 18:13–14 (개역개정)
히스기야 왕 제십사년에 앗수르의 왕 산헤립이 올라와서 유다 모든 견고한 성읍들을 쳐서 점령하매 유다의 왕 히스기야가 라기스로 사람을 보내어 앗수르 왕에게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나를 떠나 돌아가소서

 

히스기야가 사람을 보낸 곳이 라기스였다는 것입니다. 산헤립이 라기스를 포위한 채 진을 치고 있었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열왕기하 18장 17절에도 앗수르 왕이 '라기스에서부터' 대군을 예루살렘으로 보냈다는 말이 나오고, 역대하 32장 9절과 이사야 36장 2절에도 같은 장면이 이어집니다.

성벽을 공격하는 앗시리아의 공성 장치.
사진: Osama Shukir Muhammed Amin FRCP(Glasg) /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땅속에서도 확인됩니다

라기스는 오늘날 이스라엘의 텔 라기스(텔 에드두웨이르)로 알려져 있습니다.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텔아비브 대학의 데이비드 우시시킨 팀이 이곳을 발굴했습니다.

 

발굴에서는 성벽 바깥에 앗시리아 군대가 쌓은 공격용 경사로의 흔적이 드러났고, 성 안쪽에서 이에 맞서 쌓은 방어용 경사로도 확인되었습니다. 이 시기에 도시가 큰 불에 파괴된 층도 함께 나왔습니다. 땅속의 흔적이 궁전 벽의 그림과 같은 사건을 가리키는 셈입니다.

그래도 짚어 둘 것

이 부조는 앗시리아 왕실이 만든 기록입니다. 왕의 승리를 기리려고 만들었으니, 전쟁을 승자가 보여 주고 싶은 방식으로 담고 있다는 점은 감안해야 합니다. 또 성경이 다루는 것은 히스기야가 라기스로 사람을 보냈다는 장면이지, 라기스가 함락되는 과정을 따로 묘사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이 부조와 성경은 서로를 베끼는 관계가 아니라, 같은 사건의 한 대목씩을 각자의 자리에서 전하는 것으로 보는 편이 정확합니다.

37초 영상으로 보기

쇼츠로 짧게 정리한 영상입니다.

한눈에 보기

항목 내용
유물 산헤립의 라기스 부조
출토지 앗시리아 니네베 남서궁전 (라기스 방)
제작 시기 기원전 700–692년경 (포위전은 기원전 701년)
소장처 영국 런던 대영박물관
설명문 아카드어 La-ki-su (라기스)
함께 읽을 성경 열왕기하 18:13–17, 역대하 32:9, 이사야 36:2

 

참고한 자료

  • D. Ussishkin, The Conquest of Lachish by Sennacherib (Tel Aviv University, 1982)
  • D. Ussishkin, The Renewed Archaeological Excavations at Lachish (1973–1994), 5 vols. (Tel Aviv University, 2004)
  • R. D. Barnett, E. Bleibtreu & G. E. Turner, Sculptures from the Southwest Palace of Sennacherib at Nineveh (British Museum Press, 1998)
  • A. H. Layard, Nineveh and Its Remains (London, 1849)

 

사진 출처: ① Mike Peel, "Lachish Relief, British Museum 1.jpg",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② oncenawhile, "Lachish inscription.jpeg", Wikimedia Commons, CC BY-SA 3.0 ③ Osama Shukir Muhammed Amin FRCP(Glasg), "Assyrian siege-engine attacking the city wall of Lachish…",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앞서 살펴본 산헤립 프리즘과 히스기야 터널이 같은 시기를 다른 방식으로 전했다면, 라기스 부조는 이 이야기를 그림으로 보여 줍니다. 성경과 앗시리아 기록이 같은 해의 같은 전쟁을 서로 다른 자리에서 기억하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