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701년, 유다의 작은 도시들이 하나씩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앗시리아의 대군은 산악 지대를 따라 올라오며 성읍을 쳤고, 그 끝에 예루살렘이 있었습니다. 성경과 발굴 현장, 그리고 앗시리아 쪽 기록이 모두 이 해를 다루고 있어서, 세 곳의 이야기를 나란히 놓고 읽을 수 있는 드문 사건이기도 합니다.
7분짜리 영상으로 먼저 정리했고, 이 글에서는 영상에서 다 담지 못한 설명을 조금 더 풀어 적어 보겠습니다.
라기스에 진을 친 산헤립
열왕기하 18장 13절은 히스기야 왕 제십사년에 앗수르의 왕 산헤립이 올라와 유다의 견고한 성읍들을 쳐서 점령했다고 전합니다. 히스기야는 즉위 뒤 앗수르를 섬기지 않겠다고 한 왕이었습니다(열왕기하 18:7). 대제국의 그늘 아래 있던 작은 나라가 그 제국에 맞선 셈입니다.
산헤립이 진을 친 곳은 예루살렘에서 남서쪽으로 약 40킬로미터 떨어진 요새 도시 라기스였습니다. 오늘날의 텔 라기스에서는 앗시리아 군이 성벽 앞에 쌓은 공격용 경사로와 성 안쪽에서 맞서 쌓은 방어용 경사로의 흔적이 발굴되었습니다. 산헤립은 이 승리를 기념해 니네베 궁전의 한 방을 라기스 함락 장면으로 채웠고, 그 부조가 지금 런던 대영박물관에 있습니다.
히스기야는 사람을 보내 잘못했으니 돌아가 달라고 청했고, 앗시리아는 은 삼백 달란트와 금 삼십 달란트를 요구했습니다. 히스기야는 성전 문과 기둥에 입힌 금까지 벗겨 바쳤습니다(열왕기하 18:14–16). 그런데도 앗시리아는 멈추지 않았고, 라기스의 진영에서 대군이 예루살렘으로 향했습니다.
물길을 안으로 돌리다
히스기야는 침공이 닥치기 전부터 준비를 해 두었습니다. 예루살렘의 생명줄은 성 밖 기혼 샘이었으니, 적이 이 물을 차지하면 성은 오래 버티기 어렵습니다.
역대하 32장 5절에 따르면 그는 무너진 성벽을 다시 쌓고 바깥에 또 다른 성벽을 쌓았습니다. 예루살렘 서쪽 언덕에서 발굴된 폭 7미터쯤의 '넓은 성벽'은 이 시기의 것으로 보는 견해가 많고, 그 아래에서는 헐린 집터도 나왔습니다.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넓은 성벽(Broad Wall)' 유적.
사진: Ian Scott / Wikimedia Commons, CC BY-SA 2.0
물 문제는 역대하 32장 30절과 열왕기하 20장 20절이 이야기합니다. 기혼의 윗샘물을 막아 다윗 성 서쪽으로 곧게 끌어들였다는 기록입니다. 이 수도가 오늘 히스기야 터널로 알려진 암반 터널로 보입니다. 단단한 석회암을 뚫어 기혼 샘에서 실로암 못까지 약 530미터를 잇는데, 양쪽 끝에서 마주 보고 파 들어간 두 팀이 가운데서 만났고, 그래서 터널이 일직선이 아니라 구불구불합니다.

히스기야 터널 안쪽.
사진: Ian Scott / Wikimedia Commons, CC BY-SA 2.0
1880년에는 터널 안쪽 벽에서 고대 히브리어 비문이 발견되었습니다. 두 팀이 서로를 향해 곡괭이를 내리치다 상대의 목소리를 듣게 되었고, 물이 샘에서 못으로 흘러들었다는 내용입니다. 비문은 지금 이스탄불 고고학박물관에 있습니다. 다만 터널을 정확히 언제 팠는지에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 논의가 있습니다. 그래도 기원전 8세기 말 예루살렘의 공사로 보는 견해가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실로암 비문.
사진: oncenawhile / Wikimedia Commons, CC0
성벽 위에서 울린 외침
열왕기하 18장 17절은 앗시리아의 다르단, 랍사리스, 랍사게가 대군을 이끌고 예루살렘 윗못 수도 곁 큰길에 와서 섰다고 적습니다. 랍사게는 일부러 유다 말, 곧 히브리어로 외쳤습니다. 유다의 관리들이 아람 말로 해 달라고 청했지만 거절했는데, 성벽 위에서 듣는 백성들이 알아듣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말은 이집트를 믿지 말라는 조롱으로 시작해서, 히스기야에게 속지 말라는 말로 이어졌고, 항복하면 각자 자기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의 열매를 먹게 해 주겠다는 회유로 끝났습니다. 무기를 쓰지 않는 공격이었습니다.
성경은 백성의 반응을 이렇게 전합니다.
열왕기하 18:36 (개역한글)
그러나 백성이 잠잠하고 한 말도 대답지 아니하니 이는 왕이 명하여 대답하지 말라 하였음이라
침묵이 대답이었다는 이 대목이 영상 제목의 한 축이 되었습니다.
하룻밤 사이에
히스기야는 앗시리아 쪽에서 온 편지를 받아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 그 앞에 펴 놓고 기도했고, 이사야는 앗수르 왕이 이 성에 이르지 못할 것이라는 말을 전했습니다(열왕기하 19:14–34). 그 뒤의 일을 성경은 한 문장으로 적습니다.
열왕기하 19:35 (개역한글)
이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 앗수르 진에서 군사 십 팔만 오천을 친지라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보니 다 송장이 되었더라
어떻게 일어났는지는 더 말하지 않습니다. 이 문장 자체가 앗시리아 쪽 기록으로 따로 확인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앗시리아의 기록에서도 분명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산헤립은 예루살렘을 점령했다고 쓰지 않았습니다.
프리즘이 말하는 것
1830년 영국의 테일러 대령이 니네베 유적에서 얻은 점토 기둥이 '테일러 프리즘'입니다. 지금은 대영박물관에 있고, 산헤립의 원정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유다의 견고한 성읍 46곳을 점령했다는 기록과, 20만 명이 넘는 사람을 끌고 갔다는 주장, 그리고 히스기야에게서 받은 조공의 목록이 길게 적혀 있습니다. 히스기야는 새장 안에 갇힌 새처럼 예루살렘에 가두어 두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하나 구분해 둘 것이 있습니다. 20만이라는 숫자는 군대의 규모가 아니라 앗시리아 왕이 끌고 갔다고 주장한 사람의 수입니다. 왕이 자기 업적을 기록한 글이니, 숫자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그가 어떻게 자신을 기록했는지를 읽는 쪽이 맞습니다.
산헤립은 니네베로 돌아갔고(열왕기하 19:36), 성경은 그가 훗날 신전에서 아들들의 손에 죽었다고 전합니다. 바빌로니아 연대기도 기원전 681년에 산헤립이 아들에게 살해되었다고 적고 있습니다.
같은 해를 가리키는 세 곳
라기스의 부조, 실로암의 비문, 산헤립의 프리즘은 모두 기원전 700년 무렵의 같은 이야기를 가리킵니다. 앗시리아는 자기 왕의 원정을 기록했고, 성경은 포위당한 도시 안쪽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서로 다른 자리에서 같은 해를 기억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눈에 보기
| 항목 | 내용 |
|---|---|
| 시기 | 기원전 701년 (히스기야 왕 제십사년) |
| 주요 인물 | 히스기야(유다), 산헤립(앗시리아), 이사야 |
| 관련 유물 | 라기스 부조(대영박물관), 실로암 비문(이스탄불), 테일러 프리즘(대영박물관) |
| 관련 유적 | 텔 라기스, 예루살렘 넓은 성벽, 히스기야 터널 |
| 함께 읽을 성경 | 열왕기하 18–19장, 역대하 32장, 이사야 36–37장 |
참고한 자료
- D. Ussishkin, The Conquest of Lachish by Sennacherib (Tel Aviv University, 1982)
- J. B. Pritchard (ed.), Ancient Near Eastern Texts Relating to the Old Testament (Princeton, 1969), 287–288 (산헤립 연대기)
- A. K. Grayson, Assyrian and Babylonian Chronicles (1975)
사진 출처: ① Ian Scott, "Hezekiah's Broad Wall", Wikimedia Commons, CC BY-SA 2.0 ② Ian Scott, "Inside Hezekiah's Tunnel", Wikimedia Commons, CC BY-SA 2.0 ③ oncenawhile, "Siloam inscription.jpg", Wikimedia Commons, CC0
본문의 성경 인용은 성경전서 개역한글판(© 대한성서공회 1961)입니다.
이 글의 앞뒤 이야기는 산헤립 프리즘, 히스기야 터널, 라기스 부조를 각각 다룬 글에서 이어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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